새해엔 칭기즈칸이 되자
· 가난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했다.
·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의 병사들은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1에 불과했지만 세계를 정복했다.
· 배운 게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 너무 막막해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났다."
-「CEO 칭기즈칸」中 -
해가 바뀌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힘겹다. 숨이 턱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위기와 고난에 처했던 칭기즈칸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나?
칭기즈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이 정도 힘들다고 기죽거나 좌절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어야 하지 않을까.
긍정과 낙관이 성공의 비결
'경영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辛之助)는
· 가난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가난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평생 근검절약해 부자가 될 수 있었다.
· 그는 배우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것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그는
평생 배움에 열정을 쏟았고 말년에는 마쓰시타
인재 양성의 귀감이 되었다.
· 그는 몸이 약했다. 하지만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
먼저 건강의 중요성을 알았고 스스로 조심해 95세까지 장수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의 오늘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힘겨워도 자신의 내일을 낙관하는 사람만이 오늘을 충실
하게 잘 살 수 있다. 그런 긍정과 낙관이 진짜 성공의 비결이다.
랜스 암스트롱은 25세에 고환암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고환암을
극복한 뒤 세계적인 도로사이클경주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내리6연패를 했다.
프랑스 전국을 한 달간 일주하는 동안 그는 특히 산악지형에서 강세를 보였다.
암스트롱은 터질 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자전거 페달을 밟아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프스 산맥을 넘나들었다. 그는 정말이지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너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것들의 기회로 삼으라"고 가르쳤던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오늘의 위대한 승자,
암스트롱도 있는 것이다.
부정은 부정을 낳고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
비관은 비관을 심고 낙관은 낙관을 심는다.
새해 벽두에 부모님 묘소를 찾았다. 30여년 전 채 환갑도 못 지내시고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함자는 거명하는 것이 외람되지만 '정 관(觀)자 찬(燦)자'다.
아버지는 늘 짙게 밴 평안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 내 이름이 관찬아잖아.
무슨일이 있어도 괜찮다니깐 그러네, 불이 나도 괜찮아. 여기 방화선이 있잖네" 방화선이란 말 그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화선(防火線)을 뜻하는 것이려니와 또한 어김없이 내 어머니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내 어머니 함자가 '방 화(嬅)자 선(善)자'이기 때문이다.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리자
그 질박한 이름풀이 속에서 아버지는 내게 긍정을 심어주셨다.
그리고 낙관을 유산으로 물려주셨다. 덕분에 나는 산다. 아버지가 당신의 이름을 빗대어 가며 내게 이야기해준 그 뿌리깊은 긍정과 낙관 덕분에 말이다.
세상이 힘겹다. 어렵다.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이 난관을 뚫고 나갈 진정한 동력은 다름 아닌 자기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이다.
그 긍정과 낙관 때문에 마쓰시타고노스케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칭기즈칸 역시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우리 또한 그래야 한다.
그래서 새해엔 나도 마쓰시타가 되자. 암스트롱이 되자. 칭기즈칸이 되자.
자기 삻에 대한 진한 긍정과 낙관 속에서 말이다.
<출처 : 중앙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